[중국증시-마감] 위안화 약세·무역갈등 우려 속 하락
일본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이들 중 일부는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겨 은사금을 받고 일본 군국주의를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고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길을 걸었다.자립을 위해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근대화의 실패가 식민지화와 반(半)식민지화를 야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미국·러시아가 도울 수 없는 상황 중국이 전통적 관계를 깨고 스스로 제국이 됨으로써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는 조선 내에서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그렇다고 직접 통치를 하는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는 아니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결국 을사늑약과 강제합병조약으로 귀결되었다.여기에는 당시 조선 정부와 개화파 지식인에 대한 평가가 그 핵심에 있었다.
이는 강대국의 옆에 있는 약소국들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맺어야 하는 관계였다.
이 때문에 근대적 지식인들에게 조선 정부와 청은 근대화를 가로막는 구 세력.오늘 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고관대작들.
자나 깨나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던 애국심으로 보거나 두 분은 많이 닮은 점이 많다.바로 진유(眞儒)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전제군주 국가 시절의 이야기이니 통치자 군주야 갈아 치울 방법은 없으나.